한 아이를 입양하는 일은 좀처럼 가볍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1997년 론(Ron)과 나탈리(Natalie) 부부가 한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이 캐나다인 부부는 완벽한 새 가족을 찾고자, 루마니아의 아라드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부부는 1살배기 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야 말로 그들의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로디카 라비니아 파르카스였다. 그녀는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던 엄마에게 버림 받은 뒤 고아원에서 자랐다. 로디카의 몸 상태는 론과 나탈리가 보자마자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게 나빴다.

그 작고 사랑스런 아기는 영양실조 상태였고, 그로 인해 다른 문제도 겪고 있었다. 아이는 구루병에 걸려 있었고, 심각한 비타민D 결핍 및 다른 영양분 부족으로 인해 뼈가 약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부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더 있었다.

1990년 대, 루마니아의 아동 관련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다. 론과 나탈리도 로디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런 기록들이 필요할거라 생각했음에도, 어디서 자료를 찾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론과 나탈리는 딸의 지난 생활을 이해하는데 공백이 생겼다. 특히 가족 이력에 있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론과 나탈리는더 많은 정보를 계속해서 조사했고, 끝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디카는 외동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로디카 언니가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매는 각각 다른 고아원에 들어가게 됐다. 이는 로디카의 언니를 찾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론과 나탈리는 계속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저한 조사가 진행된 후, 그들은 마침내 로디카의 언니가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 알아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언니의 이름이 기아니나 파르카스(Gianina Farcas)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기아니나는 1995년 출생으로 로디카보다 한 살 많았다. 론과 나탈리는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내고 난 후,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기아니나도 입양하여 자매가 재회할 수 있게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을 해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론과 나탈리가 캐나다로 돌아오고 난 후, 놀라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로디카와 기아니나가 그 집안의 유일한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여덟 남매 중 두 명이었을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론과 나탈리는 다른 형제자매들을 찾을 수 없었다. 자매를 집으로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아니나와 로디카는 각각 소피(Sophie)와 다니엘레(Danielle)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론과 나탈리는 자매가 출생지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성을 미들네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것은 작은 행위였지만, 두 아이가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었다.

소피와 다니엘레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첫 걸음은 1990년 대 루마니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루마니아는 당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라는 독재자의 통치로 피임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소피, 다니엘레 자매와 같은 사례를 셀 수 없이 많이 낳았다.

루마니아 부모들 대다수는 더 이상 보살피지 못하는 아이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소피, 다니엘레와 같이 운 좋은 아이들은 그들을 보살펴 줄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었다.

두 소녀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신의 친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말은 쉽다고 했던가, 미비한 서류로 인해 그들의 행방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제 22살이 된 소피는 사진사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고, 21살이 된 다니엘레도 칼리지에 재학 중이다. 그들은 가까이 살며, 종종 그들이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생각해본다.

론과 나탈리가 루마니아가 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소피를 찾지 못했을 것이고, 자매는 결코 재회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운명의 한 배를 탔고, 그 후로 일어난 일들은 모두 역사로 남겨졌다.